부산에 살면서 다른지방 독립운동가를 공부하고 생가나 기념관을 찾곤했었는데 정작 부산에서 출생하고 부산에서 학교를 다니고 부산에서 독립운동을 한 사람을 모르고 있었으니 도리가 아니라 생각되어 찾아갔다.
박차정의사의 생가가 있는곳은 부산 동래고등하교 정문앞 좁은 골목안에 있다
4 칸짜리 조그마한 건물이 박차정의사 생가이다.
박차정의사는 1910년5월7일 부산 동래에서 아버지 박용한선생과 어머니 김맹련여사의 3남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일제 침탈에 항거하여 자결 순국한 아버지 와 독립운동가 집안인 어머니, 그리고 독립운동가 숙부 박일형 등의 영향으로 항일 분위기가 강한 가정환경에서 자연스럽게 항일민족 의식을 키웠다.
신간회와 의열단에서 활동한 두오빠와 함께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된것이다. 박차정의사는 1925년 부산지방 여성교육 산실이자 항일운동을 이끌어가던 동래 일신여학교(현 동래여고)에 입학 하였다. 이곳에서 항일민족의식과 남여평등사상을 고취시키고 일신여학교 동맹휴학을 주도 하였다. 또한 글솜씨가 뛰어나 교지 일신에 자신의 항일의식 과 시대인식을 표출한 문학 작품을 남기기도 하였다.
1927년 민족유일당 운동의 일환으로 여성운동의 전국적인 통일기관인 <근우회>가 결성되었다. 이에 의사는 근우회 동래지회 활동을 주도하고 근우회 중앙집행위원 과 중앙상무의원으로 선임되어 선전과 출판부문에서 주도적인 활동을 하였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의 연장으로 1930년1월 서울지역 11개 여학교의 시위투쟁인 이른바 <근우회사건>을 배후에서 지도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30년 의열단 활동하는 둘째오빠의 연락을 받고 중국으로 망명하게되고 , 국내에서 항일투쟁 공로를 인정받아 <조선공산당 재건설 동맹> 중앙위원등 의열단에서 중책을 맡아 활동하였다.
1931년 의열단 단장 김원봉과 결혼하면서 본격적으로 의열단의 핵십 맴버로 활약하였다. 그리고 청년투사를 양성하기 위하여 설립된 조선혁명군사간부학교 여자교관으로 도 활동하으며. 지청천장군 부인 이성실여사와 함께 민혁당남경조선부녀회를 결성하고 모든 조선의 여성들이 총단결하여 민족독립운동과 여성해방운동에 참여할것을 주장하였다.
1939년2월 장시성 곤륜산 전투중에 큰부상을 입고 휴유증으로 1944년 5월27일 중경에서 34세의 일기로 순국하였다. 이에 정부는 의사의 공로를 인정하여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하였다.
4칸짜리 방을 개조한 집은 분향하거나 제대로 절을 할수있는 구조도 못되는것 같았다.
박의사에 대한 각종 자료들도 게시할 곳이 없어 방바닥에 세워둔 상태고. 좁은 방 한 벽면에
부모님 영정과 박의사의 영정사진이 벽에 걸려있을 정도 이며 분향소도 없다.
부산시와 동래구청 그리고 보훈처 관계자는 이곳을 한번 방문했는가 묻고 싶다.
내일 모래가 3.1절이다. 인근 동래고등학교와 동래시장에서 대규모 3.1절 행사를 한다고 선전하고 있다. 말로만 할것이 아니라 박차정의사 생가에 들러보고 독립운동가의 예우에 맞는 분향소 라도 만들어 주었으면 하고 건의하고 싶다.
posted by 바람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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