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1km로 부산 걷기'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12/21 부산 시내는 백년 전 바다였다 (16)
  2. 2009/12/10 원조 40계단을 아십니까? (3)
  3. 2009/12/02 이런 계단 보셨어요? 반달계단, 소라계단, 40계단 (18)


1. 이런 계단 보셨어요? 반달계단, 소라계단, 40계단
2. 원조 40계단을 아십니까?


지난 두 번의 기사에서 동광동과 중앙동 사이를 이어주는 계단들을 살펴봤습니다. 이번 기사에선 그 계단 앞에서 바다를 향해 펼쳐진 공간을 들여다 보겠습니다.




계단을 내려서면 아주 넓은 평지가 펼쳐집니다. 꼬불꼬불한 길과 높낮이가 불규칙한 계단 위와는 아주 판이한 공간입니다. 건물과 길들이 평지 위에 아주 반듯하게 잘 구획되어 나타납니다.




이에 대해선 이미 말한 바 있습니다.계단 위와 계단 아래가 이렇게 단절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래 평지가 100년 전 매축에 의해 생겨난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100년 전엔 40계단 부근은 해안이었습니다. 동광동의 가파른 절벽들이 해안을 접하고 있었습니다. 40계단은 해안이 매축된 후 절벽과 매축지를 연결하기 위해 생겨났다고 합니다.   




매축 후 얻은 바다 위의 이 땅은 처음 '새마당'이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새 땅이니까 잘 구획되었습니다. 좋은 건물들이 들어섰습니다. 우체국이나 세관 등 조선 최초라 하는 행정 기관들이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이 곳엔 한국인이 없었습니다. 대부분 일본 사람들이었습니다.




광복 이전 부산에 6만명의 일본인이 있었습니다. 부산 인구의 1/3이었는데 그들 대부분이 지금의 중구지역에 몰려 살았습니다. 1923년 나온 염상섭의 만세전을 보면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부두를 뒤에 두고 곱들어서 전차길 난데로만 큰 길로 걸어갔으나, 좌우 편에 모두 이층집이 죽 늘어섰을 뿐이요. 조선집 같은 것이라고는 하나도 눈에 띄는 것이 없다. 2, 3정도 채 가지 못하여서 전차길은 북으로 곱드리게되고, 맞은 편에는 극장인지 활동사진관인지 울그데불그데한 그림조각이며 깃발이 보일 뿐이다. 삼거리에서 한참 사면팔방을 돌아다 보다 못하여 지나가는 지게꾼더러 조선사람의 동리를 물었다. 지게꾼은한참 머뭇거리면서 생각을 하더니 남편으로 뚫린 해변으로 나가는 길을 가르치면서 그리 들어가면 몇 집 있다 한다. 나는 가르치는대로 발길을 돌렸다.
(부산 지역 문화 예술 속에 나타난 부산성의 모색 중에서)






염상섭의 소설 속 지게꾼들은 바로 앞의 항구나 부산역에서 일거리를 받아 살아갔습니다. 농사만 짓던 조선사람들이 한국 속 일본 땅이 되버린 부산의 도심지 살다보니 날품 파는 것 말곤 달리 할 일이 없었습니다.   




아마 일제시대 중구 지역을 토대로 살아가던 한국인들 표정이 대부분 이랬을 겁니다. 그들의 얼굴은 힘든 노동과 기약 없는 앞날을 말해줍니다.  




하루의 노동을 마친 '새마당'의 지게꾼들이 몸을 누이러 들어간 집입니다. 일제시대 부산부(당시는 부산시가 아닌 부산부) 빈민굴은 전국적으로도 악명 높았다고 합니다.




일제시대 일본인의 도시였던 중구지역은 해방된 후에는 귀환동포의 도시와 피난민의 도시가 됩니다. 광복 후에는 20만이 넘는 귀환동포가 체류하였고 6.25 전쟁 때는 수십만명의 피난민이 몰려들었습니다. 1945년 이전 일본인 포함해 30만명이었던 부산은 1951년 인구조사에서 130만이 사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갑자기 몰려든 귀환동포와 피난민들은 항구에 가까이 있는 40계단 근처에 주로 모여 살았습니다. 그래서 40계단 앞에선 이산가족 상봉 장면이 자주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50년대 40계단 앞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전쟁은 아이들도 힘들게 했습니다. 




아프리카의 물부족 문제를 끄집어낸 MBC의 '단비'를 생각나게 합니다. 




40계단 바로 앞에 있는 뻥튀기 아저씨. 80년대까지도 쉽게 볼 수 있었던 장면입니다.


지금은 중년을 넘었을 아이들.




그리고 90년대, 40계단은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로 다시 무대에 등장합니다. 40계단이 빈곤서 문화의 코드로 거듭났습니다.  




40계단 앞 중앙동은 참 놀라운 땅입니다. 생긴지 100년도 안된 이 땅이 한국 근대사 백년의 주요 무대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일제가 조선 수탈의 기지로 이 땅을 활용했고 전쟁 때는 피난민들이 이 땅을 토대로 살았고 70년대 경제의 시대엔 수출 항구로 역할했습니다.   




시대를 받아낸 이 땅엔 역사의 나이테가 느껴집니다. 나무 전봇대가 건물들과 어울릴 정도로. 




가끔은 피난시절을 연상시키는 장터도 잠시 펼쳐집니다. 장터 속의 모자상이 어울립니다.




일본은 자신들이 매축한 이땅을 완전히 떠나진 않았더군요. 40계단 입구에 일본 최고의 자동차 회사 도요다 매장이 주변의 다른 건물들을 압도하는 위용을 자랑합니다. 렉서스에 눈길을 두지 않고는 이 40계단 앞을 들어가기 힘듭니다. 아이러니한 장면입니다.




40계단 앞에서 백년의 역사를 느껴보십시오. 조금 더 음미하고 싶으면 소라계단 위의 40계단 문화관을 한 번 들려보시고요.

Posted by 비회원


1. 이런 계단 보셨어요? 반달계단, 소라계단, 40계단


시속 1km로 부산 걷기 2번째 기사입니다. 반달계단과 소라계단을 지나 이제 계단 동네의 마지막 40계단에 왔습니다.


계단에 도착해 카메라를 들이대는데 옆에서 한쌍의 남녀가 40계단의 40개에 대한 진위 여부를 놓고 가벼운 논란을 벌입니다.
 
"정말 맞나? 함 세어 보자. 하나 둘 셋..."

지켜보니 40계단이 맞습니다. 아코디언 켜는 아저씨 아래와 위로 딱 20계단이 나눠져 있습니다.




40계단 하면 중장년 세대는 "사십계단 층층대를 앉아 우는"으로 시작하는 노래 '경상도 아가씨'를 떠올립니다. 1951년 나온 이 노래가 그 시절 피나민들의 애환을 달래주었습니다. 유행가 가사에 등장할 정도로 당시 40계단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였습니다. 40계단 앞은 항구에서 쏟아지는 구호물자로 장터가 열렸고 피난 중 헤어진 가족들의 상봉 장소로도 유명했다고 합니다.




젊은 세대는 40계단을 영화로 기억할 겁니다. 이명세 감독의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명장면이 여기서 촬영되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계단 중간의 포장마차에서 아주머니가 나오는 장면입니다. 살인 현장과 오뎅 아줌마의 태연한 모습이 충돌하여 재밌는 장면이 만들어졌습니다. 제 기억이 확실하다면 아코디언 켜는 아저씨 왼쪽의 이발소 램프 아래에 그 포장마차가 있었습니다.




영화 속의 40계단입니다. 안성기가 상대를 타격하고 현장을 유유히 빠져나오는 장면입니다. 예전에는 중간에 가로등이 있었군요. 지금은 없습니다.




여기서 계단 얘기를 좀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계단 동네라 이름붙인 이 동네엔 왜 이렇게 경사가 가파르고 넓은 계단들이 많은 걸까요?

앞서 첫번째 기사에서 말한 것처럼 40계단 아래쪽 중앙동은 100년 전 해변 또는 바다였다가 일제가 매립하면서 평평한 육지가 된 지역입니다. 그런데 이 곳은 매립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위쪽엔 산을 깍는 착평도 있었다고 합니다. 과거 영선산이라는 산이 40계단 위쪽 부근에 있었는데 일제가 그 산을 깍아 중앙동 지역을 매립했다고 합니다. 평평해진 산과 매립된 아래 쪽을 계단이 연결하게 된 것입니다.




40계단 위입니다. 중간에 옛날 옛날식 나무 전봇대가 서있고 왼쪽 위 팻말에 인쇄골목이라고 써있는 게 보입니다. 이 곳 위쪽은 인쇄소가 모여있는 걸로 유명한 동광동 인쇄골목입니다.




조금 내려왔습니다. 아래쪽으로는 바다로 향하는 길이 넓직하고 시원하게 뚫려있습니다. 이것도 매립의 흔적이죠. 새롭게 얻은 땅이라 계획적으로 설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야는 큰 건물에 막혀버립니다. 지금은 막혔지만과거엔 40계단 앞에서 항구를 볼 수 있었습니다. 피난민들은 여기 모여 구호물자를 싣고 들어오는 배를 보며 기다렸을 겁니다. 

그런데 저 앞에 여자 한 분이 저를 찍고 있네요. 오호! 서로 카메라를 마주보고 있는데요. 제가 카메라를 내려놓자 여자분이 눈길을 살짝 돌립니다. 절 찍은 건가요? 




40계단을 완전히 내려왔습니다. 40계단 앞엔 2004년 조성된 40계단 문화의 거리가 있습니다. 옛날 나무 전봇대와 195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아주 사실적인 조형물들이 이 공간을 채우고 있습니다. 40계단 문화의 거리에 대해선 다음 기사에서 다루겠습니다. 





40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지켜봤습니다. 관광객들은 기본입니다. 아코디언 조형물 앞에서 사진을 찍고 갑니다. 계단 위로 용두산공원과 복병산 공원이 있어서 그런지 한가로이 올라가는 노인들이 자주 눈에 띕니다. 커피 배달하는 아주머니도 이 계단을 자주 왔다갔다 하셨습니다. 




식사를 배달하는 아주머니도. 커피와 밥이 길을 잇고 있군요. 




조금 떨어져서 본 40계단입니다. 오른쪽 옆에 "라미넥스" 저 집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도 상호가 나옵니다. 




계단 위쪽에서 주변을 둘러봤습니다. 계단 올라서자 마자 왼쪽입니다. 왼쪽 끝에 40계단 중간에 버티고 있는 나무 전봇대에 옛날 영화 포스터가 붙어있고 앞쪽 분식점의 간판은 '추억의 40계단'입니다. 




40계단과 오른쪽입니다. 저 길로 한번 살짝 들어가봤습니다. 따라오시면 놀라운 걸 볼 수 있습니다.




20m 쯤 걷자 고색창연(?)한 건물이 나타납니다. 70년대 어디 쯤에서 멈춘듯한 건물입니다. 사람이 살지 않은지 오래되어 보입니다. 뒤에 있는 집도 이 집이 보여주는 시대와 조화를 이룹니다. 좀 오래되어 보이죠. 

놀라운 건 이 건물 맞은 편입니다. 




집들 사이에 아주 작은 계단이 낑겨 있습니다.  




40계단과는 20m정도 떨어진 곳이고요. 전봇대 보이는 곳이 40계단입니다.




계단도 울퉁불퉁 올라와 있습니다. 




이 초라한 계단을 왜 이렇게 길게 보여주냐고요? 이게 바로 원래 40계단입니다. 앞에서 우리가 본 40계단은 50년대 사진에서 보던 계단이 아닙니다. 이 계단이 사진 속의 그 계단입니다. 원래는 4m 폭이었는데 집들에 의해 잠식되어 지금은 이렇게 된 것입니다. 



니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요? 찾아보니 원래 40계단은 지금의 계단에서 북쪽으로 20m정도 떨어지 폭 1m 작은 계단이라고 합니다. 폭이나 거리는 몰라도 되더군요. 40계단과 소라계단 사이에 북쪽으로 난 계단은 이거뿐이더군요.



다음엔 40계단 앞의 문화의 거리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너무나 사실적인 조형물의 모습이 재밌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것도 발견하게 됩니다.

Posted by 비회원


시속 1km로 부산 걷기 1


부산을 걸어보는 취재기획을 시작합니다. 제목은 '시속 1km로 부산 걷기'.

사람이 걷는 속도는 시속 4km입니다. 시속 1km면 그 반에 반의 속도입니다. 부산 '걷기'가 아니라 부산 '기어가기'가 맞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그만큼 부산의 공간들을 하나하나 느껴가면서 걸어볼 것입니다. 마음으로 부산의 공간들을 더듬고 음미하면서 가면 시속 1km도 빠른 속도가 될 수 있습니다. 한 공간이 담고 있는 이야기들을 다 뒤지다보면 끝도 없죠.
 
부산, 그중에서도 '중구'를 걸어볼 생각입니다. 제가 '중구를 먼저 걸어보겠다'고 하지 않고 '중구를 걸어보겠다'고 한 것은 다른 지역을 기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중구만 걸어도 1년이 넘게 걸릴 듯 합니다. 몇년이 넘는 기획을 함부로 약속할 수는 없죠.

17세기부터 일본인들을 위한 초량왜관이 중구지역에 들어섰는데 그 범위가 현재의 중구 지역과 거의 일치합니다. 초량왜관은 일본과의 무역이 한중일 삼국 중 가장 활발한 지역이었습니다. 개항 후엔 부산이 조선의 대표 항구가 되면서 중구는 일본 등의 해외문물이 유입되는 창구 역할을 했습니다. 

제가 부산 걷기의 취재 대상으로 중구를 선택하고 그 취재 기간을 1년 넘게 잡은 이유는 중구의 공간에 쌓인 역사의 두께 때문입니다. 중구는 초량 왜관 이래로 400년의 활발한 역사를 간직한 곳으로 17세기 이래로 부산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닌 지역입니다. 공간 곳곳에 쌓여 있는 역사와 이야기들을 들어보려면 1년을 다녀도 모자랄 것입니다.

서두가 길었습니다. 여기서 끊고 일단 걸어보겠습니다.



집에서 50분 정도 지하철을 타고 중앙동역 17번 출구에 내렸습니다.

 


걷기 전에 지도 펴놓고 잠시 설명 좀. 제가 앞으로 걸어볼 중구는 대략 하얀 색 네모 지역입니다. 오늘 돌아볼려는 곳은 하얀색 타원입니다.




그림지도 하나 더 보죠. 이날 제가 걸었던 지역입니다. 오렌지색 동그라미가 바로 중앙동역 가장 북쪽(위쪽)에 위치한 17번 출구이고요 저기서부터시작해서 왼쪽 윗 부분을 훑고 지나가려고 합니다. 여긴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로 유명해진 40계단이 자리잡은 곳이기도 합니다.




그림지도에 표시된 '현위치' 앞에 난 길로 들어갔습니다. 가로수의 은행잎이 한창이었습니다. 영화 인정사정 볼것없다를 보면 안성기가 은행잎이 날리는 40계단에서 유유히 청부살인을 저지릅니다. 아마 영화의 촬영도 이때 쯤 아닐까 생각됩니다.
 



여긴 40계단이 아닙니다. 40계단은 좀 더 걸어야. 그런데 계단이 좀 특이하죠. 이건 무엇을 형상화 한 걸까요? 40계단 문화관에 물어보니 반달계단이라고 합니다. 계단 이름을 알기 전까진 배를 형상화 한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모양도 그렇고 항구의 상징성도 있으니 배가 분명하다 생각을 했죠.




항구를 떠나는 배에 오르는 기분 아닌가요?




원들이 겹쳐져 보이는 풍경이 예쁘네요.




둥그런 원 앞에 서면 갑판 맨 위에서 바다를 달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않을까요?




이 예쁜 계단 옆에 사는 기분은 어떨까요?




계단이 끝났습니다. 위쪽이 살짝 궁금해집니다. 




계단을 올라가서 북쪽을 바라봤습니다. 그러니까 아까 본 지도의 오른편입니다. 빽빽이 들어선 집들 뒤로 일본식 성 모양의 건물이 보이죠? 좀 더 다가가 보겠습니다.




이것도 독특한 풍경이죠. 저 건물은 코모도호텔입니다. 79년에 지어진 부산의 대표적인 호텔입니다. 드라마나 영화의 촬영장소로도 많이 비추어진 곳이죠. 저긴 나중에 한 번 가볼 생각입니다.




올랐던 반달계단을 다시 내려왔습니다. 계단 바로 앞에 지나가는 골목길을 걸어 40계단 쪽으로 갔습니다. 




부산의 중심지인 중구인데 건물들이 대체적으로 낡은 편입니다. 이 지역은 중심지에서 좀 떨어진 곳입니다. 거기다 시청이 이전한 뒤에는 경기가 예전보다 침체되었습니다. 건물들이 낡은 채로 관리되지 않거나




결국에는 헐려 주차장으로 쓰이기도.




엘지 위에 엘지, 엘지 위에 삼성? 에어콘 환풍기가 삼층으로 포개져 있는 모습이 재밌습니다.




골목길 한 구획을 다 지나와 뒤돌아 봤습니다.




또 신기한 계단이 보입니다. 이게 40계단? 음~ 이건 소라계단입니다.




이 소라계단과 바로 오른쪽 옆 건물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 끼워 맞춘 테트리스같은 느낌이...

바로 뒤에 있는40계단 문화관에 가면 40계단에 얽힌 역사와 문화를 볼 수 있습니다. 이건 다음에 한 가보죠.




계단은 나선형으로 돌아갑니다. 보이는 것만 따지면 4층입니다. 4층 반인가?




먼저 본 반달계단도 그렇지만 소라계단도 이렇게 동화에서나 볼 것 같은 예쁜 계단 바로 옆에 흔히 보는 이웃집 뒤켠의 모습을 보는 것이 재밌습니다. 쓰레기 모아놓은 봉지와 대야가 보입니다. 

예전의 계단은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합니다. 여기 그냥 보통 계단을 세우면 경사가 너무 높아져버립니다. 지그재그형이었을까? 




위에서 본 계단 모습입니다.




소라계단에서 보면 멀리 바다가 보입니다. 좀 더 땡겨 볼까요?




멀리 컨테이너도 보입니다. 여기를 북항이라고 합니다. 영도 대교 넘어서면 남항이라고 하고요. 북항은 무역운송 역할을 맡고 있고 남항은 고기잡이 중심지입니다.




이쯤에서 설명을 좀 더 드려야 겠습니다. 다시 아까 봤던 그림지도 보시죠.

여기 지도의 40계단길 아래쪽 대부분은 원래 100년 전엔 지도에 없던 곳입니다. 1902년부터 차차 매축된 곳으로 당시 매축 후 이 일대를 '새마당'이라고 불렀습니다. 일제는 새마당에 부산역, 부산세관, 부산우편국 등 서구 건축 기법에 따른 아름답고 우람한 3대 건물들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새마당(현 중앙동)은 당시 부산의 명소가 되었다고 합니다. 





매축 이전 중앙동 지역의 모습을 알려주는 사진과 그림입니다. 육지 쪽으로 움푹 들어가 있습니다. 초량왜관 지도의 왼쪽편이 40계단 등이 위치한 지역인데 현재 육지 지역이 바다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소라계단에서 반달계단 쪽을 봤습니다. 저기서부턴 산자락에 곡목길이 막혀 있습니다. 저쪽부터 둥그스럼한 해변이 시작되었을 겁니다.  




40계단 쪽을 봤습니다. 여기서 한 구역만 가면 40계단입니다.




과거의 40계단 모습입니다.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요? 40계단은 다음에 보여드리겠습니다.

* 과거 사진들은 중구청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Posted by 비회원